한국의 검도사

한국검도와 일본검도 비교

    첫째, 칼을 착용하는 방식

  • 일본검도는 공격적인 성격이 강하여 칼을 허리에 착용할 때 손잡이가 오른손에 가깝게 착용하고 한국검도는 방어적인 성격이 강하여 손잡이가 왼쪽에 오게 착용 한다.

    둘째, 칼을 사용하는 방법

  • 일본검도는 치기에 가까운 자르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칼의 흐름이 직선적이고 한국의 검도는 칼의 선이 길고 칼의 흐름이 부드러운 곡선의 형태로 이어지며 방어와 공격이 용이하다.

    셋째, 칼을 뽑는 방식

  • 일본검도는 기습을 방지하기 위해 몸에 근접해서 뽑는 발도기술이 발달되었다.
    한국검도는 정당한 대결을 하는 형태의 기술이 다양하게 발달되었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칼 착용 형태가 그러한 차이를 보이는 것은 검도가 그 나라의 민족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일본의 검도 기술은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보다는 상대를 해하는 것이 우선시되기 때문에 선제공격하는 공격형 발도기술을 발달시키기 위해 칼을 오른손에 가깝게 찬다. 한국의 검도 기술은 마음을 수양하고 자신의 몸을 보호하는 호신의 형태로 뽑아 칼과 동시에 방어를 취할 수 있도록 왼쪽에 착용한다.

칼을 사용하는 방법 또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위와 같은 맥락이다. 일본의 검도는 군국주의의 사무라이 정신에서 비롯되어 주군을 위해서 상대를 공격할 때는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일격필살의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 몸을 앞으로 향하여 상대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는 형태로 직선적인 공격을 하기 때문에 칼 기술이 방어적이지 못하고 단조롭다.

한국의 검도는 살생보다는 방어와 호신을 목적으로 칼의 형태와 용도에 따라 수련하며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 의하면 한국의 본국검(本國劍), 일본의 왜검(倭劍), 중국의 월도(月刀)로 구별하며 전문적인 칼의 흐름을 터득하여 도(道)에 이르는 수련방법이다.

국적 한국(Korea) 일본(Japan)
검도명칭 한국검도 대한검도
영문표기 KEOMDO KENDO
시대 삼국시대(신라) 명치시대(일본)
시대 한국전통검도 단체
韓國劍道協會
경기검도 단체
大韓劍道會
품새 쌍수도, 편수도, 검법의 품 밝기, 뽑아칼, 꽂아칼 총검도(장검) 倭劍 일본식 본1~10본
사용 환도(環刀) 사용
양쪽날검(劍)
한쪽날도(刀)
죽도사용
찌르기(목부분)
머리,손목,허리치기
검술 호대도와 평대도
조선세법(朝鮮勢法)
칼로 베기,찌르기,치기
일본 검도 발도술(장도)
이아이검법
채점방식 자르기도법(기술성)
검술의 품밝기
한손으로 쓰는칼(한자도) 편수도(소도)
양손으로 쓰는칼(한자도) 쌍수도(대도)
일본검도 경기규정
타격에 의한 점수제
승/패자 결정(일본식)
사상 선비사상
호국사상
군국주의
사무라이정신

일본검도의 한국유입왜검(倭劍)은 조선왕조 숙종때 국교(軍校) 김체건(金體乾)이 일본으로 가는 통신사를 따라 갔다가 검보(檢譜)를 얻어 그 술법을 배워 한국군사에게 훈련시킨 검술이었다. 왜검은 토유류(土由流) , 운광류(運光流), 천류류(千柳流), 유피류(柳彼流) 네가지 유파가 전하여졌다. 왜검의 기법은 네가지 기법을 주로 구사하는 검술이 타격득점으로 무도의 교육적 가치를 가르치고 있다.

경기방법은 죽도의 규정과 경기장의 면적 그리고 유효격자 부위를 정하여 타격득점 그리고 용구의 규정으로 경기를 겨루는 방식이다.

검도 자체가 일본식이고 일본 주군에 대한 충성과 한국의 식민지교육에 있어 민족말살정책을 본격화하고 군국주의의 요구에 봉사하는 일본의 황국식민을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일제 강점기 정치적인 목적과 일본정신을 배양하는 무도 장려에 있다.

시 대 소 속 내 역
조선숙종 군교(통신사) 김체건 왜검(한국 군사훈련 유입)
1888년 고종 내무부 연무 공원직 제절목 재정
1891년 고종 용무당 무도사열(고종)
1895년 명치28년 일본각지역 대일본 무덕회 발족
1896년(개국505년) 건양원년 기념 무관학교 설립, 경무청 격검교육
1904년 육군 연성학교 검숙교과 채택
1908년 한국과 일본 최초 경찰관 격검상(사회체육실시)
1913년 일본 무술회(진지내마웅) 경성중학교, 중학교 정규검도과목 채택
1914년 학교체조 교수요목(검도지정) 과외활동 과목 활성화
1916년 오성학교 격검도장시설
1922년 중학교 수의과목으로 검도수련
1927년 중학교 중학교 교과목 채택 활성화
1931년 전국지역 중학교 검도 정규과목 채택
1938년 조선교육령의거 식민지교육, 민족말살정책 본격화
1948년 창덕궁 대한검사회 결성
1949년 5월 경찰조직 경찰 상무회 조직
1952년 대한검도회 준비위구성 대한검도회 창립 준비위원회 구성
1953년 대한검사회 대한검도회로 개칭, 대한체육회 가맹
1956년 대한체육회 전국체전 정식종목 채택
1960년 사관학교 사관학교의 검도 종목 채택
1961년 육군사관학교 육군사관학교의 정식종목 채택
1964년~1970년 대한검도회 학생연맹을 중고연맹, 대학연맹 분리
1994년~현재 1994년 문화체육부 사단법인 등록
임영무 1987:208
동아일보 (1921.10.20.)
동아일보 (1922.6.30.)
윤성식 한국검도의 발달